현대 경마 혈통 3. 저지 액트
현대 경마를 뒤흔들었던 저지 액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지액트가 만들어진 배경
[유명혈통이 잡종에 패배한 날
미국산마의 본격적인 영국 경마 침략은 1857년에 시작된다.
남북전쟁이 있어 세계 정세가 불안정한 무렵 렉싱톤의 마주였던 인물이 생산마를 영국으로 운송하여 달리게 했는데 그 중에서 프라이오레스, 엘바킹이라는 2두가 활약하여 미국산마로는 첫 대상경주 우승마가 되었다.
그래서 1881년, 영국을 뒤흔들어 놓은 사건이 일어난다.
1세 때에 영국으로 건너와 현지에서 조교되고 데뷔한 이로코이가 실로 전통의 영국더비를 우승하고 더구나 같은 해 또 한마리의 미국산마 포크스홀이 영국·프랑스의 일류마들을 제치고 전통적인 파리 대상을 우승해 버린 것이다.
이듬해 1882년, 포크스홀은 영국 전통의 애스콧 골드 컵까지도 낙승을 거둬 미국산마에서 첫 유럽 챔피언이 되었지만 그 외조부에게는 "잡종" 렉싱톤의 피가 흐르고 있다. 자존심 강한 영국신사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굴욕 그 이상의 것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혈통은 씨수말도 씨암말도 2류 이하의 것이었는데... 제1회 영국 더비를 우승한 다이오메드 등 분명히 일류마도 미국으로 건너가 있지만 그들은 씨수말로서 분명히 실패했거나 고령이 되어 영향력이 약해져 방출된 투매품이었다.... 씨암말의 질도 상당히 떨어져 있었는데... 더구나 포크스홀에게는 고대 시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혈통 미상인 말의 피가 섞여 있다... 일이 있어도 어떻게 그런 "잡종"에게 져 버리다니...」
미국에서 자란 재래혈통, 더러브렛이라 인정할 만한 가치가 없는 "잡종"일 뿐이라고 경시하고 있던 영국신사들에게 있어서 2두의 미국산마에게 내리 연속 영국 전통의 대상경주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쇼킹한 사건이었다.
2류 이하의 혈통으로 개량되어 온 미국산마가 유럽의 대상경주를 달린다고 해도 영국산마에게 대적할 수 없다고 그들은 의기양양해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달려서 그 결과를 보니 엄청나게 강했다. 하급의 대상경주 정도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처음에는 태평스럽게 바라보고 이었지만 영국 전통의 대상경주를 연속해서 이기고 이후에도 계속 미국산마가 활약하기에 이르러 그 영국신사들은 냉정을 잃어버렸다.
미국산마의 유럽 유출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이다. 이것은 각 주(州)가 베팅반대법을 계속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권 발매가 금지되고 경마 그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던 탓이다.
그 때문에 대기업의 목장주와 마주는 씨암말과 생산마를 영국과 프랑스로 이주시켜 갔는데 이 말들이 달리는 것을 보면 꽤 강한 경주를 펼쳤다. 경주를 은퇴한 암말은 미국에 돌아가는 일 없이 그 대로 영국에 남아 번식에 들어가게 된다. 그것이 영국 신사들에게 불쾌감과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켰던 것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미국의 "잡종"이 모두 몰려 온다 」
「혈통미상의 말을 더러브렛으로서 인정해도 될 것인가 」
그런 의견이 계속 터져나왔다.
그래서 마침내 배제하려는 구체적인 행동으로까지 발전한 것이, 1913년의 『져지 규칙』이다.]
*저지액트가 없어지게 된 배경
[마침내 영국은 패배했다
1910년의 어느 날의 일로 미국에서 목장주와 마주를 겸하고 있었던 허먼 듀어리라는 인물이 자신이 갖고 있던 씨암말과 씨수말을 프랑스로 옮겼다. 베팅반대법이 시행되고 있어서 경마가 정지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갈 길을 잃은 타개책으로서 유럽으로 활로를 찾았던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미국 재래의 "잡종혈통"이 섞여 있었지만 모두 스피드가 뛰어나고 금방 프랑스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신천지에서 태어난 반시(Banshee)라는 암말은 일본의 오우카쇼에 해당하는 프랑스 1000기니를 이기고 스위퍼라는 수말은 사쯔키쇼에 해당하는 프랑스 2000기니를 우승했다. 그뿐인, 더바(Durbar)라는 수말은 영국으로 원정가서 전통의 영국 더비를 우승하여 프랑스산마로서는 2두째 제패를 한 것이었다.
영국이 미국 혈통을 배제하기 위해 『져지 규칙』을 만든 것은 1913년의 일로 공교롭게도 더바가 영국 더비를 우승했던 것은 그 이듬해였다.
프랑스 1000기니를 우승한 반시가 교배생활로 들어가자 그는 과감히 이 더바를 배합시켰다. 그리고 더반(Durban)이라는 암말이 태어났다. 이것이 후에 투어빌론의 어머니가 되지만 1세가 되던 때 허먼 듀어리가 사망하고 미망인은 씨암말과 생산마의 대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을 듣고 탐을 내던 자가 마르셀 부사크라는 청년 사업가였다.
20세 때에 어린 나이에도 섬유회사를 창설하고 이후 독자적인 생산 시스템과 유통 시스템을 기반으로 업적을 비약적으로 쌓아 세계 패션업계에 군림하는 섬유제국을 축적한 입지전(立志傳)적인 인물이다.
당시 아직 30세의 어린 나이이면서 마르셀 부사크는 이미 상당한 재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 풍부한 재력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더러브렛 생산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던 찰나에 때마침 듣게 된 정보로, 그는 미망인에게서 30두나 되는 씨암말과 생산마를 사들이는 일을 성사시킨다. 후에 마르셀 부사크를 세계 굴지의 대생산가로 밀어주고 더욱이 경마 후진국이었던 프랑스를, 본고장인 영국을 능가하는 더러브렛 왕국으로 만들어간 원동력이 되었지만 이들은 미국의 잡초혈통이 섞여 있는 말들이었다.
이 중에 1세 암말인 더반도 포함되어 있지만 2세가 되어 달리게 해보니 정말 예상외로 강했다. 프랑스 최고의 2세 경주에서 유명한 그랑 크리테리움을 이기고 또한 3세 때에는 암말 대상경주로 유명한 베르메이유상을 우승하여 마르셀 부사크에게 대단한 영광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그 영광은 그에게 있어서 그저 서막에 불과했다. 이 유명한 암말 더반이 어머니가 되어 투어빌론을 낳은 일로해서 대단한 활약의 계기를 갖게 되었고 세계 굴지의 대생산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신흥 더러브렛 왕국으로까지 승화시켜 그 때까지 승승장구를 구가하고 있던 영국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간다.
프랑스 더비에 우승하기를 12번, 개선문상을 이기기를 6회, 프랑스 오크스를 5번 우승했다. 이들 프랑스의 대상경주에서만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한 것은 아니었다. 영국에 원정가서 영국더비, 영국 2000기니, 영국 센트레저, 영국 오크스라는 전통적인 대상경주까지도 연달아 제패해 갔던 것이다.
투어빌론은 결코 초일류의 경주성적을 남긴 명마는 아니었다. 3세가 되어 힘이 넘치고 프랑스 더비를 낙승했지만 그 후의 경주는 부진한 성적으로 4세가 되어 조교중 골절을 입고 영광이 퇴색되어 가자 현역을 은퇴하였다. 그렇지만 씨수말이 되어 발군의 유전력을 발휘하여 1940년에 프랑스에서 첫 리딩사이어에 오른 후 합계 3회 그 자리를 차지했고 세력은 영국으로까지 파급되어 대표자마인 제벨(Djebel, 개선문상, 영국 2000기니 우승마)을 필두로 활약마를 계속해서 배출시켜 갔다.
한편 더러브렛의 순수한 혈통성을 오랜동안 추구해온 영국 신사들에게 있어서 투어빌론자마들의 활약만큼 눈에 거슬리고 불쾌한 것은 없었다. 이 혈통만큼 잡종으로 정평이 나 있는 것은 없었다.
우선 외조부에 해당하는 더바는 영국 더비를 우승했을 때 그 모계 조상이 영국의 혈통서 제1권에 올라 있지 않아서 물의를 일으켰던 혈통이었다. 더욱이 조모의 아버지 즉 외증조부인 아이리쉬래드(Irish Lad)라는 씨수말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계 쪽에 미국으로 건너간 혈통 미상 경력을 갖고 있었다. 이 결정적인 2가지 이유로 영국은 투어빌론의 혈통이 섞인 말에 대해 져지규칙에 따라 일체 등록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투어빌론의 혈통을 받았던 말들이 영국 전통의 대상경주를 연달아 침략하는 장면을 눈으로 보고서는,
「이대로 있다가는 영국은 몰락해 갈 뿐이다.」
「당장 잡종을 더러브렛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생각은 복잡해져 갔다. 그러나 이대로 전통과 권위로 고집하여 투어빌론의 혈통을 계속 거부한다면 그때까지 아주 무시하고 있던 프랑스에게 더러브렛 왕국의 자리를 빼앗기는 게 코앞에 닥쳤다. 이 대문에 1949년 마침내 영국은 1913년에 만든 져지규칙을 폐지하기로 했고 투어빌론의 혈통을 더러브렛으로 인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