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명마 '마음' 에 대하여
마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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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7 18:34
운명의 그날, 그들은 ‘마음’이 통했다!
글 임금만 조교사 부경경마장
나는 현재 부경경마공원에서 4조 조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4년 부경경마공원 개장과 함께 조교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지 벌써 9년째를 맞이했다. 현재 나는 대략 40두의 경주마를 위탁관리하고 있다. 이중에는 부경을 대표할 만한 경주마도 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 중인 경주마도 있다. 솔직히 마방을 운영하면서 경주에서 잘 뛰고, 상금을 많이 벌어주는 경주마가 조금이라도 신경이 더 쓰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나는 처음 마방을 개업하면서 마음속으로 나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내가 관리하는 모든 경주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자. 사람과 경주마는 모두 선천적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후 후천적인 능력은 아이는 부모가 만들어 주는 것이고, 경주마의 능력은 조교사인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경주마가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것은 나의 역량이다. 그 능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절대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그 경주마가 가진 모든 것을 경주로에서 발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관리하자.”
오늘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말은 애가 기수시절에 만난 ‘마음’이란 말이다.
나의 기수 생활은 평탄치 만은 않았다. 기수로서 첫 승을 기록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고, 당시 동기생들의 잇따른 사고로 인해 경주 출전에 제한을 받아 기승기회도 많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나의 첫 승을 이끌어낸 ‘초전필승’이라는 경주마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나에게 첫 승을 안겨준 경주마보다 더욱더 잊지 못할 경주마가 있다. 그는 400kg 초반대의 작고 아담한 ‘마음’이라는 마필이다. ‘마음’은 현역시절 35전을 뛰었으나 내가 그에 기승한 횟수는 불과 3전밖에 되지 않는다. 애착을 가지기에는 너무 짧은 인연 이였으나 기수 생활 중 첫 번째 대상경주 우승을 안겨줌과 동시에 힘든 시기에 너무 큰 선물을 안겨준 경주마였기에 내겐 영원히 잊지 못할 경주마로 남아 있다.
‘마음’은 당시 25조 김봉수 조교사가 관리하던 마필이다. 도입당시에도 체구가 크지 않아 크게 대성할 마필은 아니었으나, 소속조의 정성어린 관리로 인해 데뷔 7전 째 첫 입상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꾸준한 성적을 기록해 작지만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마음’은 현역시절 딱 2번의 대상경주 경험이 있다. 이중 첫 경험이 바로 나와의 인연이다. 그 대회가 바로 1994년 뚝섬배 대회다. ‘마음’이는 이 대회에 출전하기 이전 주변에서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소속조의 수장인 김봉수 조교사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였다. 마방을 맡고 운영하기에는 힘든 시기였으나 당시 김봉수 조교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소속조의 경주마 관리에 혼신을 다했다. 그 즈음 나도 기수 생활을 함에 있어 생활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 기회가 왔다. 바로 1994년 뚝섬배 대회에 출전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마음’은 당시 첫 기승이였고, 이것이 나에게는 행운으로 다가왔다.
1994년 9월에 펼쳐진 뚝섬배 대회에는 총 14마리가 출전한 가운데 이중 우승 유력마는 다름 아닌 ‘마음’과 같은 소속조의 경주마인 ‘음속돌파’였다. 실질적으로 당시 김명국 기수가 기승했던 ‘음속돌파’는 인기순위 1위의 마필이었고, 내가 기승한 ‘마음’은 인기순위에서 밀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마음’은 당시 추입 작전을 펼칠 예정이었다. 경주가 시작된 후 나는 후미권에서 기회를 보고 침착히 경주를 풀어 나갔다. 이후 경주가 진행될수록 순위를 조금씩 끌어 올렸고, 종반에는 경쟁마 대비 ‘마음’의 걸음에 힘이 붙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승선 전방 200M 앞에서 경합이 펼쳐졌다. 상대는 다름 아닌 같은 소속조의 우승 유력후보인 ‘음속돌파’였으나 나는 최선을 다해 추진을 가했고, 이후 결승선을 통과했다. 당시 우승을 확신할 겨를도 없었으나 최종 결과 ‘마음’이 ‘코’차로 이긴 것을 확인했다. ‘마음’의 우승이 확정된 이후 시상대에서 김봉수 조교사와 마주했다. 눈물이 났다. 그러나 당시 조교사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우리는 남자의 눈물을 통해 마음이 통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대상경주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기에 감격스러웠고, 김봉수 조교사는 투병생활중임에도 불구하고 소속조의 경주마가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기에 눈물이 났던 셈이다.
뚝섬배 대회 우승 후 나는 ‘마음’에 2번 더 기승해 한번 더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마음’과의 인연은 짧았지만 그는 내가 기수로 활동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상경주에서 우승의 기쁨을 안겨준 마필이었다. 결코 크지 않았던 경주마, 결코 주목받지 못했던 경주마가 내 인생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셈이다.
나는 아직 조교사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나 앞으로도 나는 부족함을 채우는데 급급하기 보다는 항상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마음’이 보여줬던 1분 29.7초의 짧았던 감동 드라마를 다시 한 번 재현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글 임금만 조교사 부경경마장
나는 현재 부경경마공원에서 4조 조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4년 부경경마공원 개장과 함께 조교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지 벌써 9년째를 맞이했다. 현재 나는 대략 40두의 경주마를 위탁관리하고 있다. 이중에는 부경을 대표할 만한 경주마도 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 중인 경주마도 있다. 솔직히 마방을 운영하면서 경주에서 잘 뛰고, 상금을 많이 벌어주는 경주마가 조금이라도 신경이 더 쓰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나는 처음 마방을 개업하면서 마음속으로 나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내가 관리하는 모든 경주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자. 사람과 경주마는 모두 선천적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후 후천적인 능력은 아이는 부모가 만들어 주는 것이고, 경주마의 능력은 조교사인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경주마가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것은 나의 역량이다. 그 능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절대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그 경주마가 가진 모든 것을 경주로에서 발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관리하자.”
오늘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말은 애가 기수시절에 만난 ‘마음’이란 말이다.
나의 기수 생활은 평탄치 만은 않았다. 기수로서 첫 승을 기록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고, 당시 동기생들의 잇따른 사고로 인해 경주 출전에 제한을 받아 기승기회도 많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나의 첫 승을 이끌어낸 ‘초전필승’이라는 경주마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나에게 첫 승을 안겨준 경주마보다 더욱더 잊지 못할 경주마가 있다. 그는 400kg 초반대의 작고 아담한 ‘마음’이라는 마필이다. ‘마음’은 현역시절 35전을 뛰었으나 내가 그에 기승한 횟수는 불과 3전밖에 되지 않는다. 애착을 가지기에는 너무 짧은 인연 이였으나 기수 생활 중 첫 번째 대상경주 우승을 안겨줌과 동시에 힘든 시기에 너무 큰 선물을 안겨준 경주마였기에 내겐 영원히 잊지 못할 경주마로 남아 있다.
‘마음’은 당시 25조 김봉수 조교사가 관리하던 마필이다. 도입당시에도 체구가 크지 않아 크게 대성할 마필은 아니었으나, 소속조의 정성어린 관리로 인해 데뷔 7전 째 첫 입상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꾸준한 성적을 기록해 작지만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마음’은 현역시절 딱 2번의 대상경주 경험이 있다. 이중 첫 경험이 바로 나와의 인연이다. 그 대회가 바로 1994년 뚝섬배 대회다. ‘마음’이는 이 대회에 출전하기 이전 주변에서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소속조의 수장인 김봉수 조교사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였다. 마방을 맡고 운영하기에는 힘든 시기였으나 당시 김봉수 조교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소속조의 경주마 관리에 혼신을 다했다. 그 즈음 나도 기수 생활을 함에 있어 생활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 기회가 왔다. 바로 1994년 뚝섬배 대회에 출전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마음’은 당시 첫 기승이였고, 이것이 나에게는 행운으로 다가왔다.
1994년 9월에 펼쳐진 뚝섬배 대회에는 총 14마리가 출전한 가운데 이중 우승 유력마는 다름 아닌 ‘마음’과 같은 소속조의 경주마인 ‘음속돌파’였다. 실질적으로 당시 김명국 기수가 기승했던 ‘음속돌파’는 인기순위 1위의 마필이었고, 내가 기승한 ‘마음’은 인기순위에서 밀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마음’은 당시 추입 작전을 펼칠 예정이었다. 경주가 시작된 후 나는 후미권에서 기회를 보고 침착히 경주를 풀어 나갔다. 이후 경주가 진행될수록 순위를 조금씩 끌어 올렸고, 종반에는 경쟁마 대비 ‘마음’의 걸음에 힘이 붙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승선 전방 200M 앞에서 경합이 펼쳐졌다. 상대는 다름 아닌 같은 소속조의 우승 유력후보인 ‘음속돌파’였으나 나는 최선을 다해 추진을 가했고, 이후 결승선을 통과했다. 당시 우승을 확신할 겨를도 없었으나 최종 결과 ‘마음’이 ‘코’차로 이긴 것을 확인했다. ‘마음’의 우승이 확정된 이후 시상대에서 김봉수 조교사와 마주했다. 눈물이 났다. 그러나 당시 조교사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우리는 남자의 눈물을 통해 마음이 통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대상경주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기에 감격스러웠고, 김봉수 조교사는 투병생활중임에도 불구하고 소속조의 경주마가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기에 눈물이 났던 셈이다.
뚝섬배 대회 우승 후 나는 ‘마음’에 2번 더 기승해 한번 더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마음’과의 인연은 짧았지만 그는 내가 기수로 활동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상경주에서 우승의 기쁨을 안겨준 마필이었다. 결코 크지 않았던 경주마, 결코 주목받지 못했던 경주마가 내 인생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셈이다.
나는 아직 조교사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나 앞으로도 나는 부족함을 채우는데 급급하기 보다는 항상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마음’이 보여줬던 1분 29.7초의 짧았던 감동 드라마를 다시 한 번 재현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