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명마 '가야산성' 에 대하여
마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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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7 18:36
“가야산성”, “천운”
글. 우창구 조교사
‘가야산성’을 만난 것은 본인이 기수로 활동하던 2005년 느지막한 여름이었다. 그 당시 가야산성은 한 참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난 그 때 41조에서 9조로 기승계약을 변경 한 참이었다. 아직도 처음 ‘가야산성’에 기승했을 때의 느낌이 생각난다. 고삐와 걸음걸이에서 가야산성의 근성과 능력이 대단한 말이구나 싶었다.
이상하게도 대체로 근성이 강한 말들은 기승자와 친해지기 쉽지 않은데 가야산성은 달랐다. 수말이 가야산성은 조교할 때는 순하고, 기승자가 유도하는대로 잘 따라주었다. 특이할 만한 악벽도 없이 참 편안하게 조교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경주때만 되면 가야산성은 180도 변했다. 기수는 그냥 말 등에 앉아만 있어도 될 정도로 가야산성이 알아서 뛰어줬다. 경주중 가야산성의 강점은 옆에 말이 붙었을 때 발산하는 근성과 승부욕이다. 본인 스스로가 알아서 더 뛰려고 했다.
2005년 10월 2000미터 일반경주에서 가야산성에 첫 기승을 했고 2착으로 들어왔다. 그 후 계속 가야산성과 호흡을 마쳐다. 드디어 2006.11.5. 대통령배(G I)경주, 내 생에 잊을 수 없는 경주가 찾아왔다. 결전의 그날을 위해 1년을 준비했다.
D-3(목)일 새벽조교를 위해 32조 마필에 기승해서 주암 경주로에 나갔다. 그런데 말이 뭔가에 놀랐는지 갑자기 앞발을 들고 기립하며 요동하는 것이 아닌가. 난 마필 등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낙마 당시는 숨도 못 쉴 정도로 가슴에 통증이 심했다. 사고로 인한 통증도 잠시 금주에 있는 대통령배가 걱정이 됐다. 그 날을 기대하며 1년 동안 준비했는데 혹시 못타면 어쩌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행이 병원에서 X-ray촬영한 결과 단순한 타박상이란다.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집으로 돌아왔다.
D-2(금)일 가슴에 통증은 있었지만 단순한 타박상 이라니 진통제를 먹으며 새벽조교를 했다. 당장 내일부터 경주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D-1(토)일 몸이 단순한 타박상이라는데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새벽조교는 쉬었다. 그리고 진통제와 우황청심환을 먹고 3개 경주에 기승을 했다. 통증은 있었지만 참을만했다. 계속 내일 대통령배가 걱정된다.
드디어 D-day다. 2경주, 4경주에 그리고 10경주에 1년을 기다렸던 대통령배가 있다. 몸 상태가 좋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준비했던 시간들과 함께 호흡을 마쳐왔던 가야산성을 뒤로한 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대통령배 경주까지 진통제와 우황청심환을 먹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그날 4경주에 내가 기승한 ‘금빛투혼’이 우승하면서 지용훈 조교사님은 500승을 달성했다.)
대통령배 경주 출주 나팔소리가 울렸다. 가야산성과 발주기에 진입하면서 그 동안의 고생했던 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기에 더욱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젠 앞으로 달려 나가 처음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기만 하면 된다.
초반 레이스 전개는 생각했던 것 보다 잘 풀렸다. 그런데 가야산성의 느낌이 평상시와 조금 달랐다. 원래 가야산성은 옆에 말들과 함께 뛰면 더 나가려해서 이를 조절해 줘야 할 정도로 승부욕이 있는 말인데 4코너에 진입하기까지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뛰려는 마음이 없는 듯 했다.
내가 100%의 몸 상태도 아닌데 괜한 욕심을 낸 것은 아닌지, 날 믿어준 조교사님께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인기마로 ‘가야산성’의 우승을 간절히 바라는 경마팬들, 혹시 우승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런 나의 마음이 통했는지, 4코너를 지나 직선주로에 진입하자 가야산성의 발걸음은 달라졌다. 고삐에는 가야산성의 힘찬 기운이 느껴졌고, 결승선 300미터를 남겨놓고 치고나가기 시작했다.
아~ 이제 됐구나 싶었다.
“우승”
함께 뛰어준 가야산성이 너무나 고마웠다. 아무 말 없이 날 믿어준 지용훈 조교사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잘 버텨준 나에게도 고마웠다. 힘들었던 만큼 그 성취감과 감격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경주때는 느껴지지도 않던 통증이 우승이 확정되자 가슴에 전기를 쏟아내듯 찌릿찌릿 했다. 힘도 빠지고 몸도 좋지 않아서 경주가 끝나고 곧바로 집으로 갔다. 집사람이 보이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동안의 노력과 마음고생에 감격의 포옹을 했다.
다음날 새벽 조교를 위해 말 등에 올랐다. 고삐를 잡지 못할 정도로 가슴에 통증이 왔다.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확인해 보니 늑골 골절이었다.
‘가야산성’
능력과 수득상금에 비해 대상경주와의 인연이 별로 없었던 가야산성은 2006년 대통령배 우승이 경주마로서의 유일한 대상경주 우승이다. 하지만 가야산성은 47전(16/12/9/3/0)의 꾸준한 성적으로 새강자, 명문가문, 쾌도난마에 이어 수득상금 4위(1,086,917,000원)다. 가야산성은 2009. 7월 당시 8세의 나이로 과천경마장을 떠나 지금은 충북 제천시의 씨앤씨홀스팜 목장에서 번식마로 생을 보내고 있다.
‘천운’
2009. 4월 내륙말생산자협회에서 주관하는 경매가 있었다. 당시 장수영 마주님과 함께 입찰가 데드라인을 3000만원으로 정하고 입찰에 참가했다. 당시 2세였던 ‘천운’은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다. 이 말이다 싶어 우린 입찰에 참여했다. 3000만원 이내에 말을 낙찰 받아야 하는데 누군가가 계속 우리의 발목을 잡고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닌가.
데드라인 3000만원.
결국 입찰가는 3000만원까지 올라갔다. 장수영마주와 난 어찌해야 할지 망설였다. 포기하자니 말이 너무 아깝고, 입찰가를 올리자니 한도 끝도 없을 것 같고,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100만원 올려 3100만원을 불렀다.
다행히 더 이상의 입찰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천운’을 낙찰 받을 수 있었다. 천운은 장수육성목장의 홍성호조련사에 맡겨줬고, 2009. 8월말 경마장에 입사했다.
외형적으로 잘생긴 ‘천운’은 발걸음도 가볍고 꽤 괜찮은 말이었다. 단지 겁이 너무 많은 것이 흠이다. 조교중에는 주변 말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옆으로 타조 말들이 빠르게 지나가면 겁을 먹어 멈추기도 했다.
경주마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 주행검사다.
천운의 겁 많은 성격 때문에, 다른 말을 뒤따라가면 혹여나 놀라지나 않을까 싶어 선행을 지시했다. 그런데 전덕용 기수가 기승한 천운이 선행으로 1:04:3에 1착으로 들어왔다.(주행검사 합격기준은 1000m 주파기록이 1분 07초 이내인 말이다)
뛰려는 마음이 없는 듯 했다.
내가 100%의 몸 상태도 아닌데 괜한 욕심을 낸 것은 아닌지, 날 믿어준 조교사님께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인기마로 ‘가야산성’의 우승을 간절히 바라는 경마팬들, 혹시 우승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런 나의 마음이 통했는지, 4코너를 지나 직선주로에 진입하자 가야산성의 발걸음은 달라졌다. 고삐에는 가야산성의 힘찬 기운이 느껴졌고, 결승선 300미터를 남겨놓고 치고나가기 시작했다.
아~ 이제 됐구나 싶었다.
“우승”
함께 뛰어준 가야산성이 너무나 고마웠다. 아무 말 없이 날 믿어준 지용훈 조교사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잘 버텨준 나에게도 고마웠다. 힘들었던 만큼 그 성취감과 감격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경주때는 느껴지지도 않던 통증이 우승이 확정되자 가슴에 전기를 쏟아내듯 찌릿찌릿 했다. 힘도 빠지고 몸도 좋지 않아서 경주가 끝나고 곧바로 집으로 갔다. 집사람이 보이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동안의 노력과 마음고생에 감격의 포옹을 했다.
다음날 새벽 조교를 위해 말 등에 올랐다. 고삐를 잡지 못할 정도로 가슴에 통증이 왔다.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확인해 보니 늑골 골절이었다.
‘가야산성’
능력과 수득상금에 비해 대상경주와의 인연이 별로 없었던 가야산성은 2006년 대통령배 우승이 경주마로서의 유일한 대상경주 우승이다. 하지만 가야산성은 47전(16/12/9/3/0)의 꾸준한 성적으로 새강자, 명문가문, 쾌도난마에 이어 수득상금 4위(1,086,917,000원)다. 가야산성은 2009. 7월 당시 8세의 나이로 과천경마장을 떠나 지금은 충북 제천시의 씨앤씨홀스팜 목장에서 번식마로 생을 보내고 있다.
‘천운’
2009. 4월 내륙말생산자협회에서 주관하는 경매가 있었다. 당시 장수영 마주님과 함께 입찰가 데드라인을 3000만원으로 정하고 입찰에 참가했다. 당시 2세였던 ‘천운’은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다. 이 말이다 싶어 우린 입찰에 참여했다. 3000만원 이내에 말을 낙찰 받아야 하는데 누군가가 계속 우리의 발목을 잡고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닌가.
데드라인 3000만원.
결국 입찰가는 3000만원까지 올라갔다. 장수영마주와 난 어찌해야 할지 망설였다. 포기하자니 말이 너무 아깝고, 입찰가를 올리자니 한도 끝도 없을 것 같고,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100만원 올려 3100만원을 불렀다.
다행히 더 이상의 입찰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천운’을 낙찰 받을 수 있었다. 천운은 장수육성목장의 홍성호조련사에 맡겨줬고, 2009. 8월말 경마장에 입사했다.
외형적으로 잘생긴 ‘천운’은 발걸음도 가볍고 꽤 괜찮은 말이었다. 단지 겁이 너무 많은 것이 흠이다. 조교중에는 주변 말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옆으로 타조 말들이 빠르게 지나가면 겁을 먹어 멈추기도 했다.
경주마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 주행검사다.
천운의 겁 많은 성격 때문에, 다른 말을 뒤따라가면 혹여나 놀라지나 않을까 싶어 선행을 지시했다. 그런데 전덕용 기수가 기승한 천운이 선행으로 1:04:3에 1착으로 들어왔다.(주행검사 합격기준은 1000m 주파기록이 1분 07초 이내인 말이다)
글. 우창구 조교사
‘가야산성’을 만난 것은 본인이 기수로 활동하던 2005년 느지막한 여름이었다. 그 당시 가야산성은 한 참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난 그 때 41조에서 9조로 기승계약을 변경 한 참이었다. 아직도 처음 ‘가야산성’에 기승했을 때의 느낌이 생각난다. 고삐와 걸음걸이에서 가야산성의 근성과 능력이 대단한 말이구나 싶었다.
이상하게도 대체로 근성이 강한 말들은 기승자와 친해지기 쉽지 않은데 가야산성은 달랐다. 수말이 가야산성은 조교할 때는 순하고, 기승자가 유도하는대로 잘 따라주었다. 특이할 만한 악벽도 없이 참 편안하게 조교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경주때만 되면 가야산성은 180도 변했다. 기수는 그냥 말 등에 앉아만 있어도 될 정도로 가야산성이 알아서 뛰어줬다. 경주중 가야산성의 강점은 옆에 말이 붙었을 때 발산하는 근성과 승부욕이다. 본인 스스로가 알아서 더 뛰려고 했다.
2005년 10월 2000미터 일반경주에서 가야산성에 첫 기승을 했고 2착으로 들어왔다. 그 후 계속 가야산성과 호흡을 마쳐다. 드디어 2006.11.5. 대통령배(G I)경주, 내 생에 잊을 수 없는 경주가 찾아왔다. 결전의 그날을 위해 1년을 준비했다.
D-3(목)일 새벽조교를 위해 32조 마필에 기승해서 주암 경주로에 나갔다. 그런데 말이 뭔가에 놀랐는지 갑자기 앞발을 들고 기립하며 요동하는 것이 아닌가. 난 마필 등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낙마 당시는 숨도 못 쉴 정도로 가슴에 통증이 심했다. 사고로 인한 통증도 잠시 금주에 있는 대통령배가 걱정이 됐다. 그 날을 기대하며 1년 동안 준비했는데 혹시 못타면 어쩌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행이 병원에서 X-ray촬영한 결과 단순한 타박상이란다.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집으로 돌아왔다.
D-2(금)일 가슴에 통증은 있었지만 단순한 타박상 이라니 진통제를 먹으며 새벽조교를 했다. 당장 내일부터 경주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D-1(토)일 몸이 단순한 타박상이라는데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새벽조교는 쉬었다. 그리고 진통제와 우황청심환을 먹고 3개 경주에 기승을 했다. 통증은 있었지만 참을만했다. 계속 내일 대통령배가 걱정된다.
드디어 D-day다. 2경주, 4경주에 그리고 10경주에 1년을 기다렸던 대통령배가 있다. 몸 상태가 좋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준비했던 시간들과 함께 호흡을 마쳐왔던 가야산성을 뒤로한 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대통령배 경주까지 진통제와 우황청심환을 먹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그날 4경주에 내가 기승한 ‘금빛투혼’이 우승하면서 지용훈 조교사님은 500승을 달성했다.)
대통령배 경주 출주 나팔소리가 울렸다. 가야산성과 발주기에 진입하면서 그 동안의 고생했던 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기에 더욱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젠 앞으로 달려 나가 처음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기만 하면 된다.
초반 레이스 전개는 생각했던 것 보다 잘 풀렸다. 그런데 가야산성의 느낌이 평상시와 조금 달랐다. 원래 가야산성은 옆에 말들과 함께 뛰면 더 나가려해서 이를 조절해 줘야 할 정도로 승부욕이 있는 말인데 4코너에 진입하기까지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뛰려는 마음이 없는 듯 했다.
내가 100%의 몸 상태도 아닌데 괜한 욕심을 낸 것은 아닌지, 날 믿어준 조교사님께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인기마로 ‘가야산성’의 우승을 간절히 바라는 경마팬들, 혹시 우승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런 나의 마음이 통했는지, 4코너를 지나 직선주로에 진입하자 가야산성의 발걸음은 달라졌다. 고삐에는 가야산성의 힘찬 기운이 느껴졌고, 결승선 300미터를 남겨놓고 치고나가기 시작했다.
아~ 이제 됐구나 싶었다.
“우승”
함께 뛰어준 가야산성이 너무나 고마웠다. 아무 말 없이 날 믿어준 지용훈 조교사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잘 버텨준 나에게도 고마웠다. 힘들었던 만큼 그 성취감과 감격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경주때는 느껴지지도 않던 통증이 우승이 확정되자 가슴에 전기를 쏟아내듯 찌릿찌릿 했다. 힘도 빠지고 몸도 좋지 않아서 경주가 끝나고 곧바로 집으로 갔다. 집사람이 보이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동안의 노력과 마음고생에 감격의 포옹을 했다.
다음날 새벽 조교를 위해 말 등에 올랐다. 고삐를 잡지 못할 정도로 가슴에 통증이 왔다.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확인해 보니 늑골 골절이었다.
‘가야산성’
능력과 수득상금에 비해 대상경주와의 인연이 별로 없었던 가야산성은 2006년 대통령배 우승이 경주마로서의 유일한 대상경주 우승이다. 하지만 가야산성은 47전(16/12/9/3/0)의 꾸준한 성적으로 새강자, 명문가문, 쾌도난마에 이어 수득상금 4위(1,086,917,000원)다. 가야산성은 2009. 7월 당시 8세의 나이로 과천경마장을 떠나 지금은 충북 제천시의 씨앤씨홀스팜 목장에서 번식마로 생을 보내고 있다.
‘천운’
2009. 4월 내륙말생산자협회에서 주관하는 경매가 있었다. 당시 장수영 마주님과 함께 입찰가 데드라인을 3000만원으로 정하고 입찰에 참가했다. 당시 2세였던 ‘천운’은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다. 이 말이다 싶어 우린 입찰에 참여했다. 3000만원 이내에 말을 낙찰 받아야 하는데 누군가가 계속 우리의 발목을 잡고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닌가.
데드라인 3000만원.
결국 입찰가는 3000만원까지 올라갔다. 장수영마주와 난 어찌해야 할지 망설였다. 포기하자니 말이 너무 아깝고, 입찰가를 올리자니 한도 끝도 없을 것 같고,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100만원 올려 3100만원을 불렀다.
다행히 더 이상의 입찰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천운’을 낙찰 받을 수 있었다. 천운은 장수육성목장의 홍성호조련사에 맡겨줬고, 2009. 8월말 경마장에 입사했다.
외형적으로 잘생긴 ‘천운’은 발걸음도 가볍고 꽤 괜찮은 말이었다. 단지 겁이 너무 많은 것이 흠이다. 조교중에는 주변 말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옆으로 타조 말들이 빠르게 지나가면 겁을 먹어 멈추기도 했다.
경주마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 주행검사다.
천운의 겁 많은 성격 때문에, 다른 말을 뒤따라가면 혹여나 놀라지나 않을까 싶어 선행을 지시했다. 그런데 전덕용 기수가 기승한 천운이 선행으로 1:04:3에 1착으로 들어왔다.(주행검사 합격기준은 1000m 주파기록이 1분 07초 이내인 말이다)
뛰려는 마음이 없는 듯 했다.
내가 100%의 몸 상태도 아닌데 괜한 욕심을 낸 것은 아닌지, 날 믿어준 조교사님께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인기마로 ‘가야산성’의 우승을 간절히 바라는 경마팬들, 혹시 우승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런 나의 마음이 통했는지, 4코너를 지나 직선주로에 진입하자 가야산성의 발걸음은 달라졌다. 고삐에는 가야산성의 힘찬 기운이 느껴졌고, 결승선 300미터를 남겨놓고 치고나가기 시작했다.
아~ 이제 됐구나 싶었다.
“우승”
함께 뛰어준 가야산성이 너무나 고마웠다. 아무 말 없이 날 믿어준 지용훈 조교사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잘 버텨준 나에게도 고마웠다. 힘들었던 만큼 그 성취감과 감격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경주때는 느껴지지도 않던 통증이 우승이 확정되자 가슴에 전기를 쏟아내듯 찌릿찌릿 했다. 힘도 빠지고 몸도 좋지 않아서 경주가 끝나고 곧바로 집으로 갔다. 집사람이 보이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동안의 노력과 마음고생에 감격의 포옹을 했다.
다음날 새벽 조교를 위해 말 등에 올랐다. 고삐를 잡지 못할 정도로 가슴에 통증이 왔다.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확인해 보니 늑골 골절이었다.
‘가야산성’
능력과 수득상금에 비해 대상경주와의 인연이 별로 없었던 가야산성은 2006년 대통령배 우승이 경주마로서의 유일한 대상경주 우승이다. 하지만 가야산성은 47전(16/12/9/3/0)의 꾸준한 성적으로 새강자, 명문가문, 쾌도난마에 이어 수득상금 4위(1,086,917,000원)다. 가야산성은 2009. 7월 당시 8세의 나이로 과천경마장을 떠나 지금은 충북 제천시의 씨앤씨홀스팜 목장에서 번식마로 생을 보내고 있다.
‘천운’
2009. 4월 내륙말생산자협회에서 주관하는 경매가 있었다. 당시 장수영 마주님과 함께 입찰가 데드라인을 3000만원으로 정하고 입찰에 참가했다. 당시 2세였던 ‘천운’은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다. 이 말이다 싶어 우린 입찰에 참여했다. 3000만원 이내에 말을 낙찰 받아야 하는데 누군가가 계속 우리의 발목을 잡고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닌가.
데드라인 3000만원.
결국 입찰가는 3000만원까지 올라갔다. 장수영마주와 난 어찌해야 할지 망설였다. 포기하자니 말이 너무 아깝고, 입찰가를 올리자니 한도 끝도 없을 것 같고,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100만원 올려 3100만원을 불렀다.
다행히 더 이상의 입찰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천운’을 낙찰 받을 수 있었다. 천운은 장수육성목장의 홍성호조련사에 맡겨줬고, 2009. 8월말 경마장에 입사했다.
외형적으로 잘생긴 ‘천운’은 발걸음도 가볍고 꽤 괜찮은 말이었다. 단지 겁이 너무 많은 것이 흠이다. 조교중에는 주변 말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옆으로 타조 말들이 빠르게 지나가면 겁을 먹어 멈추기도 했다.
경주마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 주행검사다.
천운의 겁 많은 성격 때문에, 다른 말을 뒤따라가면 혹여나 놀라지나 않을까 싶어 선행을 지시했다. 그런데 전덕용 기수가 기승한 천운이 선행으로 1:04:3에 1착으로 들어왔다.(주행검사 합격기준은 1000m 주파기록이 1분 07초 이내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