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명마 '포경선'에 대하여

한국경마는 1993년 개인마주제로 전환되기 이전 마사회가 모든 마필을 소유하고 조교사, 기수, 관리사는 마사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당시 명칭은 조기단(조교사협화와 기수협회가 분리되기 전 명칭)으로 조기단장이 노조위원장을 맡았던, 소위 뚝섬시절에는 일 년에 서너 번씩 외국에서 마필을 구매 해 왔다.

 
해외에서 마필을 구매하기 위해 조교사, 수의사로 구성된 검수단은 평균 백 만원 정도의 ‘다쳐서 못 쓰는 말’ ‘아무도 사갈 사람이 없는 말’ 등 거의 그 나라에서는 경주마가 아닌 통조림 공장으로 가기 직전의 말들을 샀다. 그러다 보니 그때 그들이 당했던 수모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구매한 마필이 김포 검역소에 도착하면 추첨을 통해 각 조교사에게 분배가 된다.

 

추첨하는 날이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일 년에 각 조에 4~5두 정도가 분배가 되니 이 추첨 하나에 일년 농사가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순간순간이 잔칫집이 되기도 초상집이 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각 조 대표로 수덕(手德)이 최고 좋은 사람이 추첨을 하러나온다. 조교사, 조교사 가족들(경마장 내에 사택이 있었다), 기수, 어느 조에 김씨 ,이씨, 박씨 ……. 그 중 16조(前박원선 조교사) 이씨는 수덕이 좋기로 유명했다. 이씨는 앞 치아가 없어 말이 새곤 했었는데 옆 조에 상문이란 관리사를 ‘항~문아 항~문아’ 라고 불러 이후 별명이 ‘똥꼬’가 된 일화를 가진 분이었다. 이씨 이분은 후에 ‘차돌’ 등 숱하게 많은 명마를 추첨에서 뽑은 16조 대표 수덕맨 이었다 한다.

 

각설하고 이때 ‘포경선’은 김종권 기수가 뽑았다. 김종권 기수는 당시 짧은 경력으로 총 107전 22승을 거둔 천재기수였다. 당시 포경선의 조교사 최연홍씨는 김포 검단 검역소에서 관리사, 수의사 등과 함께 파견 나가 있던 중 밤색의 거세마 ‘포경선’을 뽑았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뻐 하셨다고 한다.‘포경선’은 마방 입사 후 전담 조교는 배대선 조교보(現 20조 조교사)가 했고, 기승은 지용철 기수(現 49조 조교사)와 김귀배 기수가 주로 했다.

 

‘포경선’은 너무나도 월등한 실력 때문에 ‘84년 그랑프리에는 타 마필의 출주 기피로 그랑프리에서 강제로 제외되는 불운을 겪는다. 이때 우승마는 김재복 조교사가 관리하고 백원기 기수가 기승한 ‘자격루’가 차지했다.

 

1985년부터 그랑프리경주는 경마팬들의 인기투표로 출주마를 정했기 때문에 작년 ‘포경선’과 같은 불이익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해 8월 ‘진격’과의 맞대결에서 포경선은 3착으로 패배하고 만다. 레이스 내내 엄청난 방해를 받으며 ‘진격(1착)’과 ‘소림사(2착)’에게 밀려 3착을 했지만, 지금이었으면 ‘진격’은 강착 감이었다. 이때 ‘포경선’에 기승한 기수는 現지용철조교사였는데 너무 분해서 며칠 동안 잠도 못 잦다고 한다.

 



‘포경선’은 경주마로 활동하는 동안 2번의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했다. ‘85년은 지용철 기수, ’86년은 김귀배 기수가 사이좋게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만약 ‘84년 그랑프리에 ‘포경선‘이 출주 했었다면 우리나라 경마역사상 최초로 그랑프리 3연패의 대기록을 달성했을 것이다.

 

‘85년 그랑프리 당시 ’포경선‘의 부담중량은 62kg(기수 지용철), 상대마로는 서성석조교사가 관리하는 ‘파수병’ 59kg(기수 서창수), 강석철 조교사가 관리하는 소림사 60kg(기수 정태문)등이 있었지만 상대가 되지 못했다.

‘86년 그랑프리는 ’85년 그랑프리 이후 6전 전승 후의 참가였다. 당시 ‘포경선’은 김귀배 기수가 대부분 기승 했었고 대부분의 경주는 기수가 제대로 몰아보지도 못한 여유 승이었기에 그랑프리 당일 조교사의 작전지시는 ‘한번 제대로 몰아보라’였다고 하니 엄청난 자신감과 믿음이 아닐 수 없다. 포경선의 부담중량 65kg(기수 김귀배) 상대는 이봉래 조교사가 관리하는 ‘강타자’ 62kg(기수 김종권), 정찬근 조교사가 관리하는 ‘진격’ 57kg(기수 임금만)등 이었다. 게이트 열리고 레이스 중반부터 치고나가 ‘포경선’은 2착마 최태환 조교사가 관리하는 ‘총알’ 57kg(기수 윤영귀)과 13마신 차의 앞승을 거두었고 부담중량을 극복하지 못한 ‘강타자’는 하위에 그쳤다. 윤영귀 기수는 2년 연속 ‘포경선’에게 고배를 마신다.

 

이날 기승 후 김귀배 기수의 말에 의하면 ‘포경선은 액션이 크고 보폭이 넓어 마치 하늘 위를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 김귀배 기수는 잘나가는 일류 기수였다. 세월이 무상하게도 최근까지 힘든 시기를 지내던 김귀배 기수가 요즘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니 기쁘기 그지없다.


이후 ‘포경선’의 부담중량은 68kg까지 증가한다. 부담중량 증가로 인한 인대염과 말의 노쇠화로 ‘87년부터 경주를 힘에 부쳐하던 ‘포경선‘을 지켜보던 최연홍 조교사는 ’88년 포경선을 은퇴시키기로 결정한다. 당시 ’포경선‘의 나이는 8세였다.


80년대 뚝섬을 주름잡던 15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희대의 명마 ‘포경선’은 국내마 최초로 1988년 12월 15일 ‘경주마 은퇴식’이 거행 되었다. 포경선 이후로 ‘92년 가속도, ‘97년 삼각, ‘01년 대견, ‘03년 신세대, ‘04년 다함께, ‘05년 새강자, ‘07년 무패강자, ‘07년 쾌도난마, ‘08년 제이에스홀드가 은퇴식을 가졌고, 부산경남경마장에서는 ‘09년 루나, ‘10년 개선장군이 영예로운 은퇴식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