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퀸’, 우린 멋진 콤비 였지?
‘다이아몬드퀸’, 우린 멋진 콤비 였지?
글 문 수열/ 부경경마장 관리사
최근 실업난이 심각하다. 청년들은 구직난에, 중년들은 조기 퇴직으로 인해 직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럼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할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해서 얼마나 열정을 갖고 노력하고 즐거움을 느낄까?
나의 직업은 관리사다. 현재는 부경경마공원 4조 마방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열정과 재미와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도 한때는 경마장 생활에 방황 아닌 방황을 했던 적이 있었다.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몰랐고, 나의 능력을 너무 일찌감치 포기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난 지금 삶의 중요함을 알고, 일의 소중함을 알았다. 그리고 인생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경마’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경주마가 있었다.
- 나와 그 녀석은 그냥 볼품없는 인간과 동물이었다.
지난 2003년 초여름 무렵이다. 당시 모시던 권조교사님께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갑자기 퇴직을 하게 되셨고, 난 근무지를 16조(김택수 조교사) 마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마방을 옮긴 후 부터는 일에 재미도 뚜렷한 목표의식도 없이 16조에 적응하지 못한 채로 실의에 빠져 의욕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볼품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 때 나에게 다가온 경주마가 ‘다이아몬드퀸’(암말)이다.
그 녀석은 첫 인상도 내 처지처럼 볼품이 없었다. 그냥 내가 본 그녀석의 첫 인상은 한마디로 말이 아닌 ‘소’였다. 체중이 무려 530kg이나 나갔고 무더위가 시작되었지만 털갈이도 안 되고, 온몸엔 피부병이 도진 상태였다. 그리고 가운데 엉덩이뼈는 툭 튀어 나와 정말 누가 봐도 볼품없는 소처럼 보였다. 이렇다보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과연 관리를 하면 밥값은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리고 몇일 후 ‘다이아몬드퀸’의 소유주인 조동식 마주님이 마방에 들러 직접 말을 보시곤 폐마처리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셨고 결국은 폐마 시키기로 결정이 났었다.
- 값진 한마디....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다이아몬드퀸’의 퇴사가 결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이 김호 조교보(현 51조 조교사)를 만났다. 김호 조교보는 내 옆에 있는 말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고다. 그래서 난 ‘다이아몬드퀸’이라고 답하고 이제 퇴사될 예정이라고 설명을 했다. 그때 김호 조교보는 나에게 “이왕 관리사 일을 선택했으면 열심히 해라. 그리고 이 말은 혈통적으로 스피드가 뛰어난 말이니깐 단거리는 잘 뛸 거야, 잘 관리해 봐”라는 의미 있는 말을 했다.
남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당시의 나에겐 달랐다. 의욕 없이 지내고 있는 삶에서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와 희망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다아아몬드퀸’을 본 것처럼 나를 무기력하게 보고 있었을까?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라는 생각에 오기가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특별히 의미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당시 나의 상황에서는 상당히 큰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옆에는 ‘다이아몬드퀸’이 있었고, 그 녀석도 퇴사가 결정된 상태라 이미 도태된 인생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의 생활에도 변화를 주고, 경주마 ‘다이아몬드퀸’의 삶도 내가 한번 바꿔 보겠다는...
- 변화의 시작, 그리고 달라졌다.
결심은 당장 실행으로 옮겨졌다. 나는 당시 김택수 조교사님께 ‘다이아몬드퀸’을 내가 한번 관리해서 경주마로 만들어 보고 싶으니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조교사님은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다. 솔직히 내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어 시작한 일이고, 하고자하는 의욕 또한 충만했지만 ‘다이아몬드퀸’을 어디부터 손을 봐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첫 번째로 체중관리에 들어갔다. ‘다이아몬드퀸’은 당시 530kg이 넘는 거구였지만 영양불균형으로 인해 영양실조에 걸려있었던 말이었다. 체중을 빼기 위해 우선 입마개를 씌우고 곡류사료를 줄였다. 그리고 야식을 주지 않았더니 사료를 허겁지겁 먹고 치우고, 깔짚과 똥을 주워 먹어 배만 불룩 튀어 나오는 등 체중은 줄었지만 사양관리가 엉망이었다.
두 번째는 사양관리에 들어갔다. 건초는 무제한 급식하고, 곡류사료를 서서히 늘리면서 무엇보다 운동을 병행했다. 운동을 시키는 것도 만만치는 않았다. 당시 워킹 머신은 삼포 지역에 단 한 대만 있었고 그 마저도 관리자가 있어 주암지역에 있는 16조로서는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관리자가 자리를 비운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시켰다. 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효과는 눈에 띄게 나타났다. 배만 불룩한 500kg의 거구가 서서히 근육양도 늘어났고 체중도 빠지면서 경주마로서의 체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경주마의 체형을 갖추면서 주로 조교에서는 제법 스피드도 괜찮아 졌다. 어느덧 변마(?)에서 기대해 볼만한 경주마로 ‘다이아몬드퀸’은 변신을 하고 있었다.
‘다이아몬드퀸’이 변해가는 동안 나의 생활도 변해갔다. 예전에 무기력한 모습도, 실의와 절망에 빠져있던 나도 달라져 있었다. ‘다이아몬드퀸’과 함께 운동하고 생활하면서 무엇이든지 열심히만 하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도 마방에서도 열심히 했고 말 관련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데뷔전 우승에 경마대회 우승까지
드디어 2004년 1월 31일 ‘다이아몬드퀸’이 첫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인기1위인 ‘오추혼’을 제치고 1000미터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경주 초반부터 선행을 주도한 후 종반까지 단 한 차례 역전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우승이었다. 퇴사의 위기까지 처했었던 볼품없었던 경주마 ‘다이아몬드퀸’이 비로소 기대되는 경주마로 재평가를 받는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다이아몬드퀸’은 발군의 순발력을 발휘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후 2004년 8월 코리안오크스 대상경주에 출전하였고 기대치를 많이 했었지만 최종 성적은 10위,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연이어 11월에 열린 동아일보 대상 경주에 출전해서 비교적 여유있는 경주전개를 보여주며 우승을 차지했다. 변마에서 기대마로 기대마에서 진정한 과천벌 강자로 거듭난 것이다.
-‘다이아몬드퀸’, 우린 멋진 콤비였던거 알지?
생각해보면 ‘다이아몬드퀸’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보유한 능력의 200%를 발휘하고 은퇴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 내가 있었고 또한 ‘다이아몬드퀸’으로 인해 나 자신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다. 나를 변화시켜 준 ‘다이아몬드퀸’은 내겐 평생 잊지 못할 경주마로 기억될 것이다. 현재 ‘다이아몬드퀸’는 제2의 인생을 개척하며 씨암말로 활동을 하고 있다.
나도 또한 말과 함께하는 나의 삶에 감사하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주어진 일도 최선을 다하고 혈통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 직업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지금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것은, 하마터면 무너질 뻔한 삶을 ‘다이아몬드퀸’과 함께 이겨낼 수 있었기에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도 제2의 인생을 함께 시작한 ‘다이아몬드퀸’과 나는 각자의 위치에서 멋지게 해낼 것이다. 지금도 우린 ‘마음이 통하는 콤비’이기 때문에...